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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산문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본문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신형철 -
- 저자
- 신형철
- 출판
- 한겨레출판사
- 출판일
- 2018.09.22
책 속 문장 수집
-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같은 경험과 같은 고통만이 같은 슬픔에 이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 가장 정확한 의미에서의 복수는 '같은 경험'을 인위적으로 생산해내는 기획이다. 피해자는 자신이 얼마나 아픈지를 그 양과 질 그대로 알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가해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 본인의 자발적 역량만으로는 그런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가해자의 성품과 노력의 차이는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근원적 무능력, 즉 '타인의 슬픔을 똑같이 느낄 수 없음'이라고 요약될 그것과 관계하는 사태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고통스럽게 절감할 때 피해자는 가해자를 교육하여 그로 하여금 제 무능력을 뛰어넘게 만들고 싶다는 강렬한 교육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이기적이기도 싫고 그렇다고 위선적이기도 싫지만, 자주 둘 다가 되고 마는 심장의 비참, 이 비참에 진저리 치면서 나는 오늘도 당신의 슬픔을 공부한다. 그래서 슬픔에 대한 공부는, 슬픈 공부다.
- 이 세상의 슬픔 중에서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많지 않겠으나, 그런 논리들이 그 슬픔에 '위로'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 위로는 단지 뜨거운 인간애와 따뜻한 제스처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나를 위로할 수는 없다. 더 과감히 말하면, 위로받는다는 것은 이해받는다는 것이고, 이해란 곧 정확한 인식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위로란 곧 인식이며 인식이 곧 위로다. 정확히 인식한 책만 정확히 위로할 수 있다.
- 많은 사람들이 내게 와서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그것은 고마운 일이므로 나는 좋은 감정으로 응대한다. 그러나 그 응대는 그 자체로 나의 감정적 자원을 크게 소모시키는 일이다. 그런 일들이 피곤하다고 느껴지면 고마워할 줄 모르는 나 자신에게 마음이 불편해져서 그것이 또 나를 갉아 먹는다.
- 슬픔에 빠져 있지만 말고 외출도 하고 사람도 만나라고 말하는 이들의 헛소리에 신경 쓰지 말라고, 당신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저 아무 일도 안 하고 쉬는 것일 뿐이라고, 집안일도 남에게 맡겨버리고 필요하면 수면제도 먹으라고, 수면제 대신 캐모마일 차를 드셔보시라고 말하는 친척의 말은 샌드위치 그만 먹고 도장이나 핥으라는 말과 같으니 과감히 무시하라고, 함께 기도해주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말하라고, "기도는 제가 직접 할 테니 설거지나 좀 해주시겠어요?" 이쯤 되면, 정확히 알지 못하면 제대로 위로할 수 없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지 않은가. 문학에서도 그렇고 인생에서도 그렇다.
- 당신의 고통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는 말이 얼마나 잔인한가. 우리는 그렇게 잔인하다.
- 인간의 뒷모습이 인생의 앞모습이라는 것을,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인간은 타인의 뒷모습에서 인생의 얼굴을 보려 허둥대는 것이다.
- 우리가 특정한 순간에만 슬픈 것이 아니라 사실은 대체로 슬프기 때문이 아닌가. 인간은 본래 슬픈 짐승이고 우리는 모두 슬픔의 식민지가 아닌가. 이런 생각에 저항하는 일이, 요즘의 내게는 예전만큼 쉽지가 않다.
- 자신의 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채 규정되는 모든 존재들은 억울하다. 이 억울함이 벌써 폭력의 결과다. '폭력'의 외연은 가급적 넓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이런 정의를 시도해본다. '폭력이란? 어떤 사람/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 단편적인 정보로 즉각적인 판단을 내리면서 즐거워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
- 문학이 귀한 것은 가장 끝까지 듣고 가장 나중에 판단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자유롭다고 믿는 순간 바로 그 믿음에 갇힌다.
- 유다를 지배한 것은 '탐욕'이 아니라 '금욕'이라고, 선행과 행복은 신의 것이지 인간의 것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신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해 유다는 스스로 추라했다는 것, 무한한 금욕의 정신으로 천국을 포기하고 지옥으로 갔다는 것.
- 소설에서 음악이 흐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노래는 거기 그대로 있는데 삶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사랑은 식고 재능은 사라지고 희망은 흩어진다. 삶의 그런 균열들 사이로 음악이 흐를 때, 변함없는 음악은 변함 많은 인생을 더욱 아프게 한다. 이 세상을 흐르는 음악이, 흐르면서, 인생을 관찰하는 이야기. 그러니까, 인물들이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인물들의 얘기를 듣는 이야기. 말하자면 이 책은 음악 그 자체가 서술자의 역할을 한다. '음악 서술자 시점' 소설이랄까. 인생을 짧고 음악은 길다.
-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아주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됩니다.
- 인간은 무엇에서건 배운다. 그러니 문학을 통해서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운다. 그때 우리는 겨우 변한다. 인간은 직접 체험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바뀌는 존재이므로 나를 진정으로 바꾸는 것은 내가 이미 행한 시행착오들뿐이다.
- 인간이라면 기본적인 생존에 만족할 수 없으며 자신의 삶이 보다 가치 있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 그런 갈망이 없다면 그것이 곧 노예의 삶이라는 것.
- 한 작가에 대해 신속 · 정확하게 알고 싶으면 일단 세 권의 책을 읽으면 된다. 데뷔작, 대표작, 히트작. 데뷔작에는 한 작가의 문학적 유전자가 고스란히 들어 있기 때문에, 대표작에서는 그 작가의 역량의 최대치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히트작은 그가 독자들과 형성한 공감대의 종류를 알려주기 때문에 읽을 가치가 있다.
- 우리는 '고독이 밀려왔다'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하지만, 고독은 어쩌다가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독이 가끔 밀려오는 것이 아니고, 고독하지 않다는 착각의 시간들이 가끔 밀려오는 것이다.
-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하고 그래서 나는 행복은 그저 "불행하지 않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행복은 우리가 불행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그 모든 시간의 이름이거나, 혹은 내가 불행해진 뒤에, 불행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뒤늦게 얻는 이름이라고. 그래서 아도르노는 <미니마 모랄리아>(1951)에서 이렇게 말했을까.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 나는 행복했었다고 말하는 사람만이 행복에 대해 신의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 희망은 '희망이 있다고 믿는 능력'의 산물이다. 이것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이기도 하다.
- 사랑의 관계를 형성한다고 해서 내 결여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결여가 없다는 의미에서의 '완전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상대방을 통해서 내 결여와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는 있다. 내 결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 결여가 더는 고통이 아닌 생, 그런 생을 살 수 있게 된 사람을 '온전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사랑은 나를 '완전하게' 만들지는 못해도 '온전하게' 만들 수는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은 지금 사랑 속에 있는 것이다. '홀로 있을 때가 아니라 그와 함께 있을 때, 나는 더 온전해진다.'
- 거기에는 당신이라는 요소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읽힐 소지가 있다. 이것은 살아 속에서 주체가 '온전해지는' 일과는 다르다. 아무리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소중한 요소라 할지라도 요소는 한낱 요소일 뿐이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나를 채우는 '요소'가 아니라 나를 세우는 '구조'(여야 한)다. 나는 당신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 속에서 온전해진다. 결여는 여전히 있되 그 결여가 더는 고통이 되지 않는, 온전한 사람.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나를 그런 사람이 되게 한다.
- 왜냐하면 누구나 제 몫의 결여를 갖고 있는 것이 인간이고, 또 그런 인간이 홀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버거운 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사실을 언젠가부터 저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사랑이란 궁극적으로 우리가 서로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이기적인 우리가 다음과 같은 놀라운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사랑 속에 있을 때입니다. '나는 사랑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살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너를 살게 함으로써 나 역시 살 가치가 있게 되기 위해서.' 신이 있다면 그가 우리를 사랑하겠지만, 신이 없다면 우리가 서로를 사랑해야만 한다는 것. 이것이 인간의 연약함이자 위대함이라는 것. 그러므로 사랑에 관한 한, 언제나 이렇게 말할 수밖에요. 곁에 있어줄게, 우리가 온전해지기 위해서.
- 정확한 순간에 제대로 사용될 때 어떤 오래된 단어는 갑자기 빛을 뿜어낸다.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는 길도 있지만 진부한 것들을 구원해내는 길도 있다. 그렇게 손에 쥔 말들로 우리는 아름답게 고유해질 것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고 느낀점
배울 만한 것들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이자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에 위로하지만 정말로 타인의 슬픔을 그 사람이 느끼는 만큼이나 알 수 없다. 이는 당연한 현상이다. 지금 당장 타인이 길에서 넘어져 무릎이 깨진것과 내 손가락이 종이에 베인 고통 중에 나에게 더 큰 고통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당장 내 손가락에 나는 피가 더 고통스럽지 않은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는 시, 소설, 영화, 노래, 사회이슈 등 많은 다양한 장르에서 작가가 읽은 여러가지 책들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짧은 산문이지만 작가가 느끼는 점들을 마치 문학소년이 멋드러진 문장으로 풀어주는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가기도 했다. 좀 더 쉬운 말, 좀 더 쉬운 문장으로 그가 받은 느낌을 표현했다면 어땠을까? 서울대 국어국문학 교수가 쓴 책인지라 어려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딱딱했다라는 표현보다는 작가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한심했달까. 작가는 결국 '인간'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인간' 자체에 대한 물음과 이해도를 높여주었다. 자기성찰 적인 부분들이 참 많았는데 반성하는 책 같기도 하다. 책 문장 속에서 나는 이러한가?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떤가? 하는 생각을 중간중간 책을 읽다가 문득 멈추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마치 누군가 대신 말해주는 느낌이었다. 문장마다 아름다움이 가득 차있다. 생각을 말로 표현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일이던가, 내가 생각한 것을 그대로 타인에게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언뜻 이렇게 잘 표현해내는게 그저 존경스럽고 부러울 뿐이었다. 이 책은 타인을 이해하는 올바른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나에 대해 다시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드는 책이다. 내가 왜 우울하고 고독한지, 가져도 가져도 왜 더 갖고싶은 욕망이 더욱 강렬해지는지, 인간은 인간에게 왜 그러는지, 작가가 탐구하는 '인간'에서 나를 발견한다. 서로가 어떻게 상생할 수 있는지 그러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을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살아가는데 부족한 점들과 나의 단점들을 잘 알고 거기서 멈춰서 있지 않고 그것을 알고 사랑으로 나아가라고 한다. 어떤이는 또 사랑이라고 말할 수 도 있겠다. 사랑..그거 누가 몰라서 이러나? 그렇다. 이성적인 사랑뿐만 아니라 타인을 진정으로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부하고도 필연적인 이 '사랑'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단 하나의 답이다. 세상에는 사랑이 부족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부모로부터 연인으로부터 친구들로부터 심지어 나로부터 조차 사랑을 받지도 하지도 못하는 이들이 많다. 유치하게 들릴 수 있다. 거창한 것이 있는 줄 기대했는가? 정답은 항상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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